전쟁사 이야기 - 34편 리더의 자격, 권력이란 무엇인가
전쟁은 극단적인 위기입니다. 그런데 '위기'라는 말은 대단히 모순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위기'는 곧 '위험과 기회'라는 뜻입니다.
세계 전쟁사를 보면, 전쟁마다 걸출한 인물이나 지도자가 탄생했습니다. 독재자이고 전쟁광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유럽 전역을 상대로 천재적인 지략을 선보였던 '나폴레옹', 한국 광화문 광장에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나라를 구해낸 23전 23승 무패 신화의 '이순신 장군', 수많은 인재를 등용하고 조선의 안정과 왜구, 여진족 토벌을 하며 독자적인 문자 체계를 발명해낸 '세종대왕' 등등.
저는 '리더'라는게 과연 무엇인가 참 오랫동안 고민해보았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리더를 존재하게끔 하는 '권력'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궁금했습니다.
재미있는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조선 왕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누린 인물로 평가받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연산군' 입니다.
(호화스러운 삶을 살았으며 전국의 미녀들을 모집하고 국가의 재산을 탕진한 연산군은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전국에서 모인 미녀들로 인하여 '흥청망청'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겼다고 합니다. '흥청망청 돈을 쓴다'는 것은 연산군이 만든 것이죠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6955973&memberNo=10039576)
그러나 조금이라도 사회탐구, 한국사 지식이 있는 분들이라면 끝에 '군' 자가 붙은 의미를 잘 아실 것입니다. 예, 쫓겨났어요. 물론 최고 권력을 쥐었던 자가 쫓겨난다는 의미는 곧장 모가지가 날라간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연산군이 조선 역대 왕 중에서 가장 권력이 강했다'라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저는 '권력'이라는게 대체 무슨 정의를 통해 설명되는지, 그 속성은 무엇인지 등이 궁금했습니다.
그나마 현대에 들어와서는 '권력'은 비로소 측정 가능한 형태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항상 변동하고 그 수치가 눈에 보이고 객관적인 숫자로 나타내어집니다. 전국 단위의 총선에서 어느 당이 더 많이 뽑혔는지, 우리는 두루뭉실한 언어 대신 확실한 숫자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와 참패가 뚜렷이 구분되었습니다. 저는 어느 쪽이 이길지 까지는 예상하고 맞췄지만, 이만큼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쏠린 결과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http://m.ppomppu.co.kr/new/bbs_view.php?id=issue&no=304562)
괜히 또 시끄러운 댓글 달릴 이야기는 그만하고, 본격적인 태평양 전쟁에서 유명한 리더를 한 분 소개해보겠습니다. 지난 전쟁사 시리즈에서 잠깐 언급했었던 '체스터 니미츠' 장군입니다.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20대 시절부터 구축함 함장을 맡았으며, 후에는 해군 출신으로서 원수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특히 그는 인사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눈썰미로 유명했으며, 각 함정에 적절한 함장과 지휘관들을 배치시키면서 일본을 몰아세운 중요한 인물입니다.
https://twitter.com/5starleadership/status/1098282782017667072?lang=bg)
체스터 니미츠 장군은 결과적으로 일본 제국 해군을 무찌르고 항복을 받아낸 사람입니다. 그런데 좀 더 미세하게 관찰을 해보면, 그의 인격과 스타일을 통해서 배울만한 점들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 주력 함대가 거의 '증발'하고 난 뒤 그 함대의 사령관을 맡게 된 니미츠 장군은 당시 해군의 분위기나 사기가 처참하게 떨어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진주만 공습은 해군 참모와 장교들의 책임을 물을 사안이 아니라 판단하였으며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합니다.
만약 강경하고 단순무식한 장군이었다면 진주만 공습의 책임을 모두 전가하여 대대적인 물갈이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진주만 공습으로 피폐해진 태평양 미 해군을 또다시 약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당시 미 해군의 복무하던 군인, 참모, 장교들은 모두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뛰어난 인재들이었으며 이들을 물갈이 한다면 새로 보충하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태평양 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된 니미츠 제독은 당시 좌천 위기에 놓여있던 모든 해군 장병과 장교들의 자리를 유임시키겠다고 선언하였으며, 이는 한순간에 분위기를 뒤집었습니다. 비록 진주만 공습에 따른 피해와 사기 저하를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니었지만, 니미츠 제독은 대국적인 결단으로 휘하 부하들의 사기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곧장 진주만 공습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서, 미 해군과 당시 미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는 도쿄를 공습하는 상징적인 쇼를 기획합니다. 육상발진 쌍발기(너무 무거워서 항공모함에서는 이륙이 불가능합니다)를 어떻게든 개조하여, 이들을 일본 근해까지 몰래 접근시킨 후 도쿄를 공습, 곧장 대만이나 중국으로 튀고 해군은 다시 미국으로 튄다는 계획이었죠.
우여곡절 끝에 이 일도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이 일을 통해 미국이 언제든지 일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공포심을 심어주었고, 반대로 미국인들에게는 우울한 분위기를 반전시킨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여담으로 여운형인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독립운동가께서 당시 도쿄가 폭격당하는 것을 보고 일본 제국의 패망이 머지 않았다고 예상했다 합니다.
(항공모함으로부터 아슬아슬하게 이륙하는 육상 발진 대형 폭격기의 이륙 장면. 이들 '둘리틀 특공대'는 도쿄를 공습하였고 이를 통해 미국의 단단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91%98%EB%A6%AC%ED%8B%80_%EA%B3%B5%EC%8A%B5)
이 사건은 일본에게 매우 심각한 충격을 주었고, 일본 제국 해군은 진주만 공습 당시 끝장을 내지 못했던 미 해군 항모를 유인, 섬멸할 작전을 세우게 됩니다. 그것이 제가 여태 전쟁사 시리즈에서 사골처럼 우려먹은 '미드웨이 해전'입니다. 미 해군에 항공모함이 존재하는 한, 일본 제국 본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판단한 것이죠.
미드웨이 일대에 대규모 일본군의 상륙과 항공세력의 결집을 사전에 포착한 미 해군은 만반의 준비를 갖춥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니미츠 제독이 당시 미 해군에서 작성되던 인사고과 평가 보고서를 통해 적절한 지휘관들을 배치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당시 미 해군 인사 보고서가 공정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물론, 니미츠 제독이 사람을 보는 뛰어난 안목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결국 미드웨이 해전을 책임질 두 명의 주요한 제독이 임명됩니다. '스푸루언스 제독'과 '플레쳐 제독' 입니다.
플레처 제독
https://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4&pn=0&num=34009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제독
https://ko.wikipedia.org/wiki/%EB%A0%88%EC%9D%B4%EB%A8%BC%EB%93%9C_A._%EC%8A%A4%ED%94%84%EB%A3%A8%EC%96%B8%EC%8A%A4
이 두 장교를 임명한 것은 미드웨이 해전에 굉장히 중요했는데, 이들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적절한 판단을 통해 아군 함대를 성공적으로 방어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지휘 체계를 상호 존중하에 잘 정리하여 지휘계통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침착한 성격을 가지고 아군의 중요한 자산인 항공모함을 효과적으로 은신시키거나 방어했으며, 그러면서 일본 제국의 항공모함 4척을 전부 박살내는 대승을 거두는데 큰 보탬이 됩니다.
더욱이 일본 제국 해군이 항모 4척을 잃으면서, 결국 마지막 역습을 위해 야간전(당시 일본 해군은 야간전에서 미 해군을 뛰어넘는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을 계획하여 공격을 시도했으나, 스프루언스 제독은 목표였던 일본 항공모함 격멸을 한 이후 더 이상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함대를 안전하게 다시 재배치합니다.
결국 뒤늦게 미 해군이 야간전을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일본 해군은 미련을 버리고 후퇴하다가, 배웅하러 나온 미 해군 항공기들의 마중을 받고 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정리하자면, 니미츠 제독은 누구보다도 군대에서 '훌륭한 지휘관과 군인'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으며 원칙적으로 공정하게 사람을 평가했습니다. 또한 플레쳐, 스프루언스 제독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후에도 적절한 인물들을 함대 곳곳에 배치하면서 결국 미 해군 함대는 니미츠 제독의 밑그림을 바탕으로 탄탄한 조직으로 거듭납니다.
결국 이것을 위해서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인간을 정말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진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중소기업의 악덕 사장들은 부하 직원을 부품처럼 부려먹는 이야기가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곤 합니다. 부하나 아랫사람에게 소위 '갑질'을 해대는 재벌가도 몇년 전에 크게 뉴스에 올라왔었죠.
결국 군대도 사람으로 이루어진 집단입니다. 단순히 자기가 장교이고 높은 사람이라고 군인들을 막 대하다간, 프래깅(아군이 의도적으로 아군 지휘관을 살해하는 행위)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상당한 군인들이 명분도 실리도 없는 전쟁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지휘관들을 프래깅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권력'이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생각을 지지해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하고, 높은 위치에 올라있다 하더라도 공정과 원칙을 내세워서 아랫사람에게 진심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저 또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스승이 저를 지도해주셨고, 좋은 친구들이 저를 도와주었으며, 존경스러운 부모님이 저를 가르치셨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사람은 사람을 통해 발전하고, 사람에게 가장 큰 자산은 그를 따르고 공감해주는 다른 사람입니다.
다만 이건 절대로 정답이 아니고 단순히 제 생각일 뿐입니다. 앞으로 더 공부해보겠습니다.
전쟁사 시리즈
https://orbi.kr/00020060720 - 1편 압박과 효율
https://orbi.kr/00020306143 - 2편 유추와 추론
https://orbi.kr/00020849914 - 번외편 훈련과 숙련도
https://orbi.kr/00021308888 - 3편 새로움과 적응
https://orbi.kr/00021468232 - 4편 선택과 집중
https://orbi.kr/00021679447 - 번외편 외교전
https://orbi.kr/00021846957 - 5편 공감과 상상
https://orbi.kr/00022929626 - 6편 정보전
https://orbi.kr/00023174255 - 7편 실수와 인지오류
https://orbi.kr/00023283922 - 번외편 발상의 전환
https://orbi.kr/00023553493 - 8편 준비와 위기대응
https://orbi.kr/00023840910 - 번외편 비전투병과
https://orbi.kr/00024082234 - 9편 예상과 예측
https://orbi.kr/00024160983 - 10편 신뢰성
https://orbi.kr/00024418374 - 번외편 보안
https://orbi.kr/00024715925 - 11편 기출분석
https://orbi.kr/00025035755 - 12편 파일럿 교육 양성
https://orbi.kr/00025121266 - 13편 인적자원과 교육
https://orbi.kr/00025579054- 14편 설계사상
https://orbi.kr/00026239605 - 15편 독소전쟁
https://orbi.kr/00026862509 - 16편 목적과 효율
https://orbi.kr/00027274206 - 17편 현대전의 발전 양상
https://orbi.kr/00027336409 - 번외편 항공모함 시대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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