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yune94 [294882] · MS 2009 · 쪽지

2012-12-14 04: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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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평범했던 소년의 파란만장한 한양대 경제학과 입학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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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기를 쓸 수 있게 된 영광을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신 부모님과, 수많은 선배님들에게 바칩니다.


 


 


 


0. Intro


 


 


 


드디어 기나긴 수험생활 끝에 나도 드디어 수기를 쓰게 되었다.


 


중고등학생 때 나보다 앞서 지나갔던 선배님들의 자취를 따라 걸어,


 


드디어 나도 수험생활의 종착역에 도착했고 나도 이 자리에 펜을 잡고 서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나의 이야기를 읽고 또 나의 길을 걷고 또 그들도 이 자리에 서게 되겠지. 후훗.


 


 


 


1. Turning point


 


 


 


나의 수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까?


 


어떻게 시작해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그래, 내가 공부를 자발적으로 처음 시작한 중학교 3학년.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너무 어리지도 않고 너무 늙은 것 같지도 않다. 중학교 3학년이 딱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중산층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먹고 싶은 것은 대부분 먹을 수 있었고, 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 할 수 있었다.


 


노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하기 싫어하고 친구들과 만나는 것을 즐기는,


 


정말 뭐하나 특출난 것 하나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던 20087, 내게, 아니 우리 가정에 시련이 닥쳐왔다.


 


나의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은 아버지의 3억원의 빚 소식과 함께 찾아왔고,


 


우리 가족은 집을 팔고 뿔뿔히 흩어졌다.


 


 


 


그렇게 나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게 되었고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왔던 내가,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 나는 할아버지와 둘이 사는게 불쌍한 것이라고 인식조차 못했지만,


 


왠지 모르게 사람들이 나를 동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많이 들더라. ^-^


 


아무튼 그때부터 나는 내 생에 처음으로 자발적인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계기가 뭐냐고?


 


그냥 왠지 서러웠다.


 


그리고 너무 외로웠다.


 


 


 


많던 친구들은 이사로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고,


 


동물농장의 TV소리와 어머니의 도마소리와 함께 일어나던 일요일 아침은


 


너무나도 고요하게 변해있었다.


 


이렇게 좋은날 아침에 나 혼자라는 것이 너무 서러웠다.


 


정말 공부라도 하지 않으면 외로워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외로움을 내 의식 속에서 지우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큰 전환점이 된 순간이었다.


 


 


 


2. 여긴 어디?나는 누구? 이곳은 유토피아? 나는 김X??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남들이 다들 똥통 양아치 고등학교라고 손가락질하던 고등학교였지만,


 


난 왠지 모르게 나의 모교가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사실 두발자유에 공학이라서 안좋은 소문이 돈거지 대학은 알아서 잘들 간다.)


 


 


 


입학당시 나의 첫 심정은...


 


꽃밭...


 


이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싶었다...


 


학교가 온통 핑크빛, 벛꽃 엔딩이었다...


 


 


한창 소녀xGee 열풍이 불던 그 때...


 


남녀공학의 소녀들은 긴 생머리로 남심을 흔들어놓았다...(사실은 나의 마음...)


 


수기와는 상관이 없지만 우리 모교에 미녀들이 정말 많았던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나는 지금까지 태어나서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인기를


 


이곳 유토피아에서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으아...


 


한창 드라마 꽃보다 감자F4가 유행하던 시절


 


나는 김X으로 불리며 정말 흡사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다.


 


여학우들이 나와 인사를 하면 막 너무나 좋아하였고,


(그것이 정말 날 좋아한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심지어 남자반인 우리반에 찾아 들어와 나의 번호를 당당하게 따가는 여인도 있었다!!


(물론 그 뒤로 연락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장난이었는 듯 하다.)


 


 


 


하지만 이런 핑크빛 생활은 잠시,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의 행복을 미루기로 결심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6시까지 밥먹고 설거지하고 샤워를 하고 6시 반까지 학교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수업 시작인 830분까지 야자실에 들어가 자습을 했다.


 


단언컨대 이때 나만큼 부지런한 고등학교 1학년생은 한명도 없었으리라.


 


그렇게 중학교때 반에서 30등도 찍던 나는 고1 중간고사 때 반에서 1등을 차지하게 되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나처럼 지극히 평범하던 놈이 반에서 1등을 하고


 


모범 우등생으로 대우받는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이때부터 나는 1등이자 모범 우등생으로서의 명예를 계속 누리기 위해 계속 공부하게 되었다.


 


 


 


3. 극약처방, 혹은 독약처방?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나는 고3이 되었다.


 


내가 고3에 오기까지 얻은 타이틀.


 


내신 죽돌이” , “모의고사 병X”


 


제일 많이 듣던 말.


 


쟨 내신은 좋은데 모의고사는 잘 안 나와


저래가지고 무슨 대학을 가냐 ㅋㅋ


내신만 파는 저런 애들보다 내가 대학 더 잘 간다 ㅋㅋ


 


 


 


난 고3 3, 언어 4등급을 받고 극약처방을 내리기로 결심했다.


 


내신을 때려치고 수능만 파기로.............


 


학교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스트레이트로 잠을 자고


 


점심시간에 일어나서 야식을 먹고 다시 7교시까지 잔 후,


 


나의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누군가 그랬던가?


 


모든 역사는 밤에 쓰여진다고........


 


나는 자폭의 역사를 쓰고 있었다...........................


 


 


 


어쨌든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하루하루는 무진장 천천히 지나가지만,


 


한달한달은 무진장 빠르게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수험생들은 100% 공감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난생 처음의 수능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뭔가 굉장히 얼떨떨했다.


 


말로만 듣던 수능을 내가 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또한 내 수능 성적표도 믿기지가 않았다.........ㅋㅋㅋㅋ

 


3년동안 미친 듯이 공부한 결과가 고작 이건가 싶었다.


 


 


 


재수를 하고 싶었다.


 


1년만 더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그만두고 싶었다.


 


여기서 끝내기엔 너무나도 아쉬웠다.


 


 


 


하지만 가정형편은 날로 어려워져가고 있었고,


 


집에서는 재수를 하려거든 집을 나가라고 하였다.


 


 


 


4. 배수진, 혹은 인생 막 던지기


 


 


 


그래서 집을 나왔다.


 


지금도 기억한다.


 


20121215.


 


나의 절친한 친구와 함께 서울대의 꿈을 품고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신림9) 254-192번지 대도원룸 10X호로 이사를 갔다.


(여기서 잠시 제게 재수의 기회를 주신 친구 어머니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뭔가 모를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동시에 찾아오는 기대감,


 


그리고 내 인생은 점점 파멸로 치닫는 듯 했다.


 


현역 수능 때 소홀했던 EBS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현역 때 소홀했던 폭동사의 전설의연합”, X사의 단풍잎이야기”, “소굴과싸움꾼”, “바람의X등등 온갖 게임을 섭렵했다.


 


역시나 한번 무너진 습관은 다시 되돌리기 힘든 법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잠시 맛보았던 자유의 달콤함이 개나리의 향기까지 적시고 있었다.


 


그렇게 위기의식을 느낀 친구와 나는 4월 중순에 자취생활을 접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5. 언어와의 전쟁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마음을 굳게 다져먹고 오로지 도서관과 집만을 다녔다.


(사실 양심선언을 하자면 PC1시간정도씩 5번정도 가기는 했다...그놈의 전설의 연합...허허)


 


도서관에 오갈때도 PMP에 국사,근사 인강을 담아서 보았고,


 


밥을 먹으면서도 TV를 본다는 느낌으로 그냥 강사가 떠드는거 구경하면서 먹었다.


(이게 정말 내가 추천해줄 수 있는 공부법인 것 같다.


밥 먹으면서 책을 읽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TV를 보듯이 PMP의 인강을 보는 것은 쉽다.


나는 사탐을 따로 공부한 적이 없이 오로지 밥먹고 이닦고 걸어다니고 하는 자투리시간에 인강을 듣는 것 만으로 총 강의수 100강인 인강을 5번 돌리고 수능 때까지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재수 후 처음 치룬 6월 모의평가는 참담했다.


 


아직도 언어는 4등급에 가까운 3등급이었고, 수리도 1등급 턱걸이,


 


외국어와 사탐은 그나마 안정적인 1등급이었다.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왜 나는 언어영역에 있어서 시간이 그렇게 모자라는지 알 수 가 없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쭉 독학을 해왔기 때문에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원론적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의미와 취지를 철저하게 곱씹어보았다.


 


그렇게 나는 문제보다는 정확한 제시문 독해가 우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정확한 제시문 독해방법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찾냐는 것이었다.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정말 이름 없는 인강도 들어보고


 


문학의 정의와 생성과정까지 생각해보았고 마침내 나만의 제시문 분석틀을 만들게 되었다.


 


 


 


그 분석 틀을 EBS 지문에 적용시키며 연습해가며 9월에는 2등급까지 올랐고,


 


언어를 풀면 10분씩 모자라던 내가, 막판에는 어떤 모의고사를 풀어도 20분씩 남게 되었다.


 


 


 


결국 2013 수능 때 언어영역 만점을 받았고,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과 논술전형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어내었다.


(논술은 따로 준비한 적이 없고 수능 이후 기출문제 몇 개만 풀어봤다.)


 


 


 


6. 재수 후기


(사실 여기가 하이라이트다.


이걸 쓰기 위해 여기까지 썼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말 미칠 듯이 죽도록 많이 힘들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도 아싸처럼 공부했기 때문에 외로움을 잘 안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싸인거랑, 아싸 인싸 개념의 없이 그냥 혼자인거랑은 많이 다르더라.


 


 


 


학교에서 그냥 옆에서 공부하던 친구들이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렇게 힘이 되는 것인 줄은 재수할 때까지 몰랐다.


 


 


 


독학재수를 하는 동안 정말 외로웠었다.


 


그냥 내가 이대로 지구에서 사라져버려도


 


아무도 나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내가 하루 중 유일하게 하는 말은 단 한마디였다.


 


 


 


식권 주세요.”


 


 


 


지금 나에게는 저 말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로 들린다.


 


내 인생의 유일한 낙은 두 달에 한번 미용실에서 미용하는 날...


 


그 날은 나에게 유일하게 용인되는 수다의 시간이었다.


 


 


 


사회에서 동떨어져서 혼자라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거기다가 재수가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는 중압감은 나를 끝없이 옥죄였다.


 


 


 


정말 마음에서 불심이 저절로 솟아올랐다.


 


왜 스님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스스로 깨달았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인생이 끝없는 고통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애를 낳는다면 그것은 아이에게 축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선사하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불교의 진리를 단박에 깨우쳤다.


 


 


 


하지만 수능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오히려 편해지더라.


 


내가 이토록 열심히 살아왔고, 열심히 공부했고,


 


내가 정말 성적이 못 나와서 이상한 대학에 가고 사람들이 나의 노력을 몰라주더라도


 


내 자신이 노력한 것을 알기에,


 


나는 어느 대학에 가더라도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정말 결과보다 중요한 것이 과정이구나.


 


명문대를 가는 애들이 성공하는 이유가 학벌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노력할 줄 아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성공하는 거구나 싶더라.


 


 


 


그리고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견뎌낸 내가 스스로 너무나도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이 고통스러운 과정이 드디어 몇 일 뒤면 끝난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했다.


 


나도 아르바이트와 같은 사회생활을 조만간 즐길 수 있겠구나 하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미친 듯이 웃으면서 펑펑 울었다.


 


이때 당시의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들도 정말 노력을 한다면 이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재수 때의 수능 날은 현역 때의 수능 날과 다르게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비록 수능 점수는 수리 영역에서 살짝 아쉽게 나왔지만,


 


역시 결국 신은 노력한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주변에 봐도 정말 열심히 한 친구들은 결국 어떻게든 다 좋은데 잘 들어가더라.


 


 


 


한양대학교 수시 합격자 확인을 위해 로그인 했을 때 나오는


 


합격을 축하합니다.” 의 페이지를 본 순간


 


정말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나의 지난 4년간의 모든 괴로움들이 용서가 되었다.


 


 


 


당신은 4년간 노력해온 것이 마침내 결실을 맺을 때의 기쁨을 아는가?


 


단언컨대 내 짧은 20년 생 중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한양대학교가 합격자들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를 읽는 동안


 


정말 눈물이 별똥별이 내리는 밤의 폭포처럼 쏟아졌다.


 


중학교 3학년부터 노력해오던 모든 순간들이 느껴졌다.


 


내가 결국 해냈구나, 나 정말 열심히 살아왔구나.


 


정말 말할 수 없는 감동이 흐르던 순간이었다.


 


 


 


나의 인생은 이렇게 다시 시작되고 있다.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과 13학번 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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