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접 [591036] · MS 2015 (수정됨) · 쪽지

2017-10-21 00: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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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주인장의 모의고사는 역시 차원이 다르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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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실 안에서 A군은 수능에 관해선


가장 정통이 나 있던 인물이었다.



"답안지를 나눠줄 시간이군. 감독관! 답안지를 주게나."


종이 울리자 A군은 감독관에게 마치 지시를 하듯이


답안지를 요구하였다.



"이보시오. 아무리 수능이란 것에 능통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감독관을 거스르면 퇴실이라는 것을 모르시오?"



A군은 피식 웃더니


단 여섯글자로 감독관을 무력화시켰다.



"법원 가실래요?"



감독관은 뭔가 씹은 듯한 표정을 잠시 짓더니


자신이 해야할 일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A군은 답안지를 받아들고


마치 유충렬이 천마를 타고서


적병들을 우수수 추풍낙엽처럼 쓰러트리듯이


빈 동그라미들을 끝없이 채워만 갔다.



오랜 수능 경험에서 단련된 그의 마킹실력은


흡사 관운장이 청룡언월도를 휘두르고


안량과 문추의 목을 벤 것과 같이


신속하면서도 한 치의 오차조차 없었다.



이윽고 A군


시험지를 받아들고


필적확인란을 읽기 시작했다.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A군은 필적확인란을 보더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주인장이 드디어 내 인생을 알아주는구만."



순식간에 일필휘지로 필적확인 문구를 써내려간 A군은


다시 종이 울리고 시험지 배부를 받기 시작하자


마치 음식을 먹기 전 조심스레 음식에 담긴 장인의 정성과 솜씨를


시각적인, 그리고 청각적인 경로를 통해 감상하는 미식가처럼


시험지 표지를 힘차게 넘기고


파본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이 집 주인장은 동네 상인들이 만든 모의고사와는 차원이 다르군"



A군은 파본이 없이 완벽하게 인쇄된 시험지에 매우 만족하며


자신이 이 수능계에서 연륜을 쌓게 된 계기가



그저 솜씨가 안 좋은 주인장과


그 주인장들이 만든 안 좋은 모의고사를 접했기 때문이지



절대로 자신이 무언갈 잘못하거나 안 해서 때문은 아니라고


다시 한번 되새김질을 하였다.



"...거 연륜이 높으신 분이라면 이쯤에서 시험지는 미래의 자신에게 양보해야 한다는건 아시지 않구려?"



A군의 감상이 너무 길었는지


감독관이 바로 와서 제지를 하였다.



A군


기꺼이 그러겠노라 하고 승낙하였다.



"오늘 녀석은 참 재미있는 녀석이겠군... 어디 주인장 솜씨 좀 확인해볼까?"




종이 울렸다.


모두들 일제히 표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A군도 그들과 동시에 표지를 넘겼다.




"......오늘 메뉴가 왜 이리 뜨겁소?!?"



오랜 수능 연륜으로 다져진


A군의 여유로움이 갑작스레 깨지기 시작했다.




수능 역사상 기록에 남을 만한


주인장이 심혈을 들여 만든


불수능 1교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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