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모형)은 세상을 해석하는 함수이다
우리는 중학생때 처음 '함수'라는 것을 배웁니다. 그러나 전 중학생때 배우는 함수의 정의라던지, 그 성질에 대해서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를 포항에서 지냈기 때문에, 막연히 당시 집 근처에서 유명하던 포항 공대를 가고 싶어했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생을 소위 뺑뺑이로 신청한 이후, 입학 전 겨울방학때 고등학교에 미리 가서 선생님들과 면접(물론 무슨 당락을 결정하는 면접은 아니었고, 제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 학교 차원에서 먼저 불러주는 자리였습니다. 좀 웃긴게 뭐냐면, 당시 전 과학고등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떨어졌거든요. 그런데 고등학교에서는 중학교에 그런 명단을 요구를 한다고 하더군요. 중학교 입장에서도 이 친구들이 꽤 괜찮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좋은 교육을 바라기 때문에, 이러한 정보를 전달해줄 때 "이 학생들 공부 열심히 잘 하는 학생들이니까 거기서 섭섭치않게 잘 대우해주셈" 이라고 말을 했다고 나~~ 중에 중학교 선생님들께 들었습니다)을 보았습니다.
그때 제게 '함수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정말 깊이도 없는 실망스러운 대답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계장치요'라고 답했거든요. 그래서 당시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 저보고 포항공대는 수학에 대해 깊이 공부한 친구들이나 갈 수 있는 좋은 대학이라고 말씀해주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왜 갑자기 함수 이야기를 하냐면, 문득 제가 제목에 말한 '모형'이라는 것이 곧 일종의 복잡한 함수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모형이라는 것, 모델이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를 가진 넓은 것이고 제가 느끼기에는 보통 뭔가 그림을 그릴때 기준이 되어주는 어떤 물체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은거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말하는 모델이라는 것은, 무슨 패션쇼에 나오는 모델이 아니라 수학적으로 함수에 가까운 모델입니다. 차근차근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오늘 설명한 모델과 비슷하게, '프레임'이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이것도 그냥 직역하면 '틀'이라서 뭐 거푸집이나 무슨 창틀을 생각하기 쉬운데, 이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정치권에서 자주 쓰입니다. 뭔가 어떤 특정한 모양의 틀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 틀의 모양에 맞게 세상이 보인다는 것이죠
함수의 정의는, 대략 간단하게 정의하면 정의역 x를 집어넣었을 때 딱 1가지 치역 y가 나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자판기에 동전을 집어넣고, 1000원짜리 콜라를 빼기 위해서는 1000원을 정확히 입력해야지 콜라라는 결과값이 나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모델도 비슷합니다. 이 세상은 복잡해도 너무! 복잡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핵심 부분만 빼내어서 좀 축소하고 간단하게 바라보는 것을 선호합니다.
예컨데 1940년을 전후로 해서 집권한 미국의 널리 존경받는 지도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1929년 미국에서 터진 대공황이 전 세계로 뻗어나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었고,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오히려 물건 가격은 내려감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수요와 공급 곡선이 만나지 못해서(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어 소득이 없어지니, 물건값이 비정상적으로 내려가도 여전히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기업이 돈을 못버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짐) 경제에 대한 완전한 자유방임주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이전과 다른 정책을 펼친 것을 말합니다.
저도 경제학을 깊이 공부하지 못해서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1929년 경제 대공황 이후 케인즈라는 걸출한 경제학자가 나타나서, 오히려 이전과 다른 방법, 그러니까 그냥 손만 놓고 지켜보기만 하던 정부가 이제 시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각종 복지 혜택은 물론, 공공사업을 대규모로 진행시켜서 사람들의 고용을 촉진하고 소득을 향상시켜, 소비를 촉진하여 전체 경제 시스템에서 돈이 굴러가는 것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세계 경제 대공황이라는 커다란 숙제를 받은 루즈벨트는 이러한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뉴딜 정책을 매우 과감하게 시도하여, 대규모 공공시설 건설업을 부양하고 고소득층에 대한 세율을 높여서 그 재원으로 적극적인 투자와 공공사업, 복지를 진행하였고, 과잉생산을 적극적으로 제한하며 노조 등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상당히 복합적인 처방이었습니다.
당시 소련이라는 인류 사회에 거대한 실험이 진행되며 적대하던 시점에서, 극단적인 시장 방임주의를 해오던 미국에게 이러한 정부의 개입은 사회주의와 비슷한 면모가 충분히 있었으며 또한 비효율성에 대한 끊임없는 반론이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여태 경제학자들이 지지하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연스러운 회복은 너무나도 먼 미래로 보였으며 이제 적극적으로 인위적인 정부 주도 정책을 통해 빨리 경제가 회복하지 않으면 그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아사해버릴 위험이 있었습니다.
다만 역설적인게 오히려 만약 미국이 극단적인 시장에 대한 자유 방임주의를 방치하여 경제가 더더욱 박살이 났다면, 오히려 사회주의라던지 훨씬 더 극단적인 경제 사상이 대안으로 떠올랐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이 가능합니다. 때문에 전 루즈벨트를 사회주의자이니 좌파이니 하면서 까는 것을 좀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을 너무 극단과 극단으로 바라보는 틀 또한 문제가 많습니다.
뉴딜은 만능 주사약이 아니었고, 여러 번의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시행되었습니다. 지금도 뉴딜이 과연 정말 성공적이었는가, 성공적이었다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에 대한 논쟁은 존재합니다만 대체로 뉴딜은 위기의 미국을 구한 성공적이었던 새로운 방법이라고 평가받는 것으로 압니다.
그와 더불어 루즈벨트가 이끌던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승전국이 되었고, 비록 4선 도중 뇌출혈로 생을 마감하면서 부통령 핸리 트루먼이 남은 기간을 이끌었으며, 마지막에 일본에 핵을 투하하는 결정을 한 것도 이분의 결정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루즈벨트는 경제 대공황은 물론 세계적으로 극우의 광풍이 불던 시기,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세계 대전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 궁극적으로 미국의 안전으로 직결된다는 점을 역설해왔으며, 실제로 역사적으로도 그의 말이 맞았고 그 덕분에 링컨 대통령과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널리 존경받는 대통령입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시행했던 '그린 뉴딜' 또한 이름으로만 보아도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을 따라하면서, 세계적인 화두가 된 친환경을 첨가하여 시행된 정책입니다. 사진은 루즈벨트 동상 앞에 선 문재인 대통령
https://www.yna.co.kr/view/PYH20210521004200013
왜 잘 알지도 못하는 경제학 이야기를 꺼냈냐면, 경제학이 바로 대표적으로 '모델'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경제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수 많은 합리적인 주체들의 집합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미래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한 네트워크입니다. 인간의 머리로는 경제를 구성하는 모든 면을 한꺼번에 입력받고 슈퍼 컴퓨터처럼 연산할 수 없기에, 각자 다른 주장과 이론을 바탕으로 '모델'을 제시하고 그 모델에 따라 움직입니다.
비슷한 경제 모델의 예시가(뉴딜과 비슷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로 옆나라 일본에서 시행되었던 '아베노믹스'입니다.(그리고 한국은 이걸 다시 따라해서 과거 박근혜 정부 당시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이 '초이노믹스'라는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뉴딜은 커녕 아베노믹스도 제가 깊이 공부해보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름 양적 성장을 추구하며 아베 총리가 집권 도중 인기를 누리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으나 야심찬 기대를 하고 계획하던 2020 도쿄올림픽이 코로나 사태라는 세계적인 억까를 당하기도 하면서, 그 원대한 꿈은 다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국의 현실과 잘 섞어서 나름의 독특하고 개성 있는 경제 정책을 시행할 때 그걸 우리는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으로 베트남의 경제 모델이나, 중국 특색의 경제 모델 등이 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경제를 예시로 들어서 시원시원하게 말씀을 못 드렸는데, 본격적으로 외교와 군사 안보 정책을 모델의 예시로 삼아 설명해보겠습니다.
김정섭 소장님의 <외교상상력>은 제가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국제정치학에 대한 교양서적입니다. 이 세상의 외교 상황은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하며, 각기 다른 이론들과 모델들이 이 세상을 해석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862573
일본 제국이 만약 이성을 가지고, 경제 대공황 와중에 침략이라는 사업을 통해 경제를 회복시킨다는 미친 정책을 체택하지 않았었더라면, 적절히 내부적인 개혁(마치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처럼)을 통해 온건적인 해결을 추구했다면 지금 한국의 극우 일뽕들이 바라는 것처럼 조선은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그동안 여러 전쟁과 침략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은 바 있으며, 소위 침략을 통한 약탈적 경제의 단맛에 눈이 돌아가있었기에, 결국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을 건드린다는 끔찍한 실수를 선택합니다.
이것만 보아도 얼마나 군사적, 외교적 수단이 경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외교 또한 경제에 못지않게 매우 복잡한 것이고, 이 세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국제정치학 개념을 해석하기 위해 다양한 모델들이 개발되고 동원되어 왔습니다.
쉽게 말해서 세상의 요소들을 담아서, 간단하고 작은 축소 모형으로 만들어서 이 모형을 통해 거꾸로 다시 세상에 적용해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정교하고 훌륭한 좋은 모델은 좀 더 정확하게 세상을 분석하고,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받아들이며 미래를 조금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김정섭 소장의 저서 <외교상상력>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는 모델은 바로 '공격적 현실주의'인데 쉽게 말해서 스타크래프트의 논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오로지 이 세상에는 승자와 패자가 존재할 뿐이며, 내가 강하지 않고 약하다면 상대방에게 먹힌다는 약육강식의 고전적이고 기본적인 원리를 충실히 따른 모델입니다.
해당 모델에서는, 세상을 굉장히 이분법적이고 단순하게 바라봅니다. 내가 상대방보다 강한가? ok 그럼 평화가 온다. 내가 상대방보다 약한가? 그러면 전쟁이다! 라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이지만, 생각보다 꽤나 다양한 상황에서 요긴하게 쓰이며 우리에게 패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을 얻게 해주는 모델입니다.
공격적 현실주의에서는 국내의 민주주의 절차와 요소, 헌법정신, 타국과의 미래 관계, 상대방과의 문화적 경제적 교류 등의 복잡한 요소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굉장히 단순한 모델입니다. 오로지 힘이 승리와 평화의 수단이고, 특히 내가 바로 그 패권국이 되어야지 가장 안전한 평화가 온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단순하고 초보적인 모델인 만큼 이 세상의 복잡한 사례를 모두 설명하지 못합니다. 공격적 현실주의에 의하면 결국 세계 각국이 모든 힘을 소진할 때까지 계속 치고박고 싸워야 합니다. 항상 강대국이 약소국을 군홧발로 짓밟으며, 이 세상에 약소국이나 중견국은 존재할 수 없으며 오로지 강대국 몇 개만이 힘의 균형을 이루며 존재해야 합니다.
공격적 현실주의가 쉽게 적용되지 않는 대표적인 관계가 바로 양안관계, 중국과 타이완의 관계입니다. 장제스의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도망간 이후, 중국 본토와의 모든 면에서 엄청난 격차가 발생하였습니다. 중국은 15억의 인구 대국이 되어, 실제 중국을 지배하는 공산당에게 명분이 있든 없든 타이완과 무력 또는 평화적 통일을 한다면 굉장히 일방적인 통일이 될 것입니다. 1인당 구매력이나 소득에서는 여전히 타이완이 앞서긴 하지만, 문제는 그 총량과 체급 차이가 너무 심각하게 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타이완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바로 'tsmc'를 필두로 한 글로벌 공급망입니다. 당장 대만군은 중국군과 붙으면 지는 것이 당연한 수준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으며, 특별히 중국군보다 군사 기술이 발달한 것도 아닙니다. 이번에 한국이 4.5세대의 kf-21 전투기 개발에 성공하는 것을 보고, 전투기 개발이 생각보다 쉽고 간단한 것인 줄 알고 덤볐다가 견적을 내보니 도저히 감당이 안되서 발을 뺀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고작 작은 땅떵어리 섬이 아닙니다. 바로 그 섬에 있는 다양한 자본력과 기술력입니다. tsmc는 한국의 삼성을 제치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반도체 회사로 거듭났으며, tsmc가 만약 중국의 미사일에 파괴당한다면 전세계적인 혼란과 피해가 예상됩니다.
중국의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군사적으로 겁만 주되 실제로 군사력을 동원하여 소모전을 치르지 않고, 알아서 대만의 지도자들이 가져다 와서 tsmc를 비롯한 대만의 주요한 과실을 '가져다 받쳐주는' 것을 내심 바라고 있는 듯 합니다. 때문에 군사적 압력을 동원하면서도 스파이나 미인계, 뇌물을 통해 대만 정치와 사회에 깊숙히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https://www.epochtimes.kr/2023/12/668870.html
중국이 만약 대만에 대한 무력침공을 감행한다면, 보나마나 대만의 사회 인프라나 대다수 기술력이 크게 훼손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글로벌 공급망에 큰 영향을 미쳐, 전 세계적인 반발과 보복성 경제 제재로 인하여 이후 암담한 미래를 겪을 위험이 큽니다.
그 외에도 이미 중국과 대만은 경제적으로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니까,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은 자기파괴적인 행동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외교 이론 중에서는 이러한 경제적, 문화적 교류로 인해 전쟁이 억제된다는 모델도 존재합니다.
예컨데 한국 입장에서, 북한과 통일을 할때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뭘까요? 피도 안 흘리고, 북한에 그나마 존재하는 인프라나 기업들(물론 가치가 매우 적겠지만)을 온전히 얻는 것입니다. 안그래도 씹창이 난 북한을 먹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켜서 그나마 있던 시설들까지 전부 박살낸다면, 통일 이후 그 수많은 피해를 복구할 생각에 눈앞이 깜깜해집니다.
흥미롭게도 북한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폐쇄적인 세상이며 독자적인 경제 체제(그 잘난 주체사상과 주체 경제사상)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굉장히 높은데, 북한은 그걸 오히려 취약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실제 김정일 어록에 보면 식량이나 연료 등을 해외에 의존하는 것은 칼을 외국에게 쥐어주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도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의 전쟁을 억제하는 것은 바로 상호 간의 경제적인 교류와 마찬가지로 대만이 국제적으로 갖는 위상 때문인데, 문제는 북한과 남한은 사정이 좀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것은 다른 모델을 통해서 다른 설명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북한과 남한은 그나마 경제적 교류 창구이던 금강산 관광 지구나 개성공단이 폐쇄된 이후, 공적으로 인정된 구호 식량 등의 교류만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한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경제적 혹은 문화적 교류가 거의 없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그냥 쳐들어갈 수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상호 경제적으로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면, 전쟁으로 인해 크게 작용할 경제적 부작용을 염려해서 전쟁이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니까요.
메우 흥미롭게도 남한과 북한의 기묘한 평화를 유지시키는 것은 바로 주한미군, 그러니까 미국으로 꼽힙니다. 아니 미국은 한국의 동맹국이고, 한국을 북한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 왜 거꾸로 남한이 북한으로 쳐들어가는 것을 억제한다는 거지???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제도상에서, 전시 작전 통제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전시에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있는 명령권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이게 문제가 한국이 아닌 한미연합사령부에 존재합니다. 때문에 제도상으로 한국은 미국을 완전히 무시하고 마음대로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깊은 내용은 저도 잘 몰라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특히 이것이 한국의 주권에 엄밀히 관련된다고 생각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이고, 이것을 돌려받으려고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 당시 북한이 무려 민간인이 거주하는 연평도에 대한 포격 도발을 발생시켰을 당시, 정말 한국은 북한과 전쟁 직전까지 다가갔습니다. 이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얼씨구나! 하고 이 참에 북한을 밀어버려야겠다! 라고 하면서 한국을 밀어줬을까요? 정 반대였습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오른 이명박 대통령이 굉장한 수준의 보복 공격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막으려고 열심히 통화를 하면서 말렸다고 합니다.
북한은 오히려 항상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라고 욕하고 남한을 미제의 앞잡이 승냥이라고 욕하지만, 정작 미국이 없었다면 북한은 힘의 논리에 따라 남한에게 벌써 먹혔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1980년대 이전까지 남한이 아직 북한에 대한 확실한 우위가 없을 때는 분명 주한미군의 존재는 곧 북한의 2차 침공을 막아서는 억제력을 발휘했으나, 이제 상황이 역전된 이후에는 오히려 남한이 북한에 대한 대규모 보복 공격이나 전쟁을 시작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https://m.nocutnews.co.kr/news/amp/776287
미국이 호시탐탐 북한의 명줄을 노린다고 북한이 선전하는 것과 달리, 오히려 미국은 남한이 연평도 포격전을 빌미로 북한에 대한 대대적인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https://www.yna.co.kr/view/MYH20101124003800038
공격적 현실주의와 극명히 대비되는 매우 과감한 주장을 설명해보겠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민주평화론'인데, 저를 포함해서 누구나 그 구체적인 내용을 들으면 상당히 과감하다는 것에 놀라워합니다.
민주평화론의 핵심은, 같은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가진 국가끼리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명제입니다. 물론 이 전쟁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를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데, 사상자 1천명 이하의 갈등은 전쟁이 아니라고 보기에 세계 2차 대전에서 독일의 편에 선 핀란드가, 연합국의 편에 선 미국과 서류 상으로 치른 전쟁은 전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정확히 기억이 안나서 여기에 쓰지 않겠습니다. 추가로 책을 직접 사서 읽어보시거나 공부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주 흥미로운 주장이었습니다. 특히 이 주장의 주요 의의는, 이 세계에 민주주의 국가가 많아질 수록 더더욱 세계 평화에 가까워진다는 궁극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과감한 주장은 겉으로 보면 꽤나 그럴싸하기에, 저 또한 긴가민가합니다. 여전히 이 명제는 민주주의와 전쟁이라는 개념을 너무 입맛대로 맞추고 어거지로 주장에 끼워맞췄다는 비판이 있으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그 국민이 뽑은 지도자가 최종 결정권을 가지는데, 국민 다수가 희생될 위험이 있는 전쟁이라는 선택을 국민이 결코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과거 중세나 근대 국가에서는 전쟁의 결정과 시행이 매우 빨랐으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행위는 여러 차례에 걸쳐 동의와 천천히 숙고를 거쳐서 결정되기에, 그 사이에 상대방에게도 이성적인 판단을 할 시간 여유가 주어진다는 점 등이 있습니다.
이 모델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민주주의 국가들은 위와 같은 특성들 때문에 서로 전쟁을 일으킬 수가 없고, 때문에 세상에 민주주의 국가가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세상이 더욱 평화로워진다는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민주평화론은 민주주의의 전파에 상당한 의의를 둡니다.
특히 모델의 예시로 유용하게 소개하고 싶은 것이 바로 미국 대통령 예측 모델입니다. 대통령이 누가 될 지 확실하게 아는 방법은, 대통령 투표 전에 전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입니다만 그것은 너무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듭니다. 그래서 일부 표본을 집계해서 일반화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하고 예측을 합니다.
이번에 트럼프와 해리스가 서로 업치락뒤치락하는 상황에서 좀 더 정교한 예측 모델이 필요했습니다.
오랫동안 미국 대통령을 예측해온 교수들은, 각자가 고안한 모델을 통해 세계를 분석하고 누가 이길 지를 가늠해보았습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177
마치 처음 제가 이야기한 함수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정한 지표, 예컨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6월 국정 지지율, 2분기 GDP 성장률, 현 집권당의 집권 기간 등을 숫자로 뽑아낸 뒤에, 자신이 만든 모델에 집어넣고 그 결과가 무엇을 도출하는지만 알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아쉽게도 위의 뉴스기사 말고,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트럼프가 힐러리를 이기는 대선에서는 트럼프의 예측을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모델이 이번에는 해리스를 지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결과를 알죠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다는 것을.
이처럼 모델은 상당히 유용하지만 100% 완벽하진 않고, 이번에 오차가 발생했으니 추가적인 부분을 고려하거나, 조금 더 정교한 모델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번에는 정확한 예측에 실패했으니, 해당 모델을 만든 교수님은 다시 모델을 뜯어보고 실제 현상과 비교하면서, 어느 변수를 추가로 고려할 것인지, 어떻게 좀 더 정교하게 모델을 만들지를 고민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좋은 모델의 개발과, 적용은 여러분이 문과로 진출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중요하게 쓰일 것입니다. 이공계열에서도 연구실에서 진행하고 성공했던 실험이나 합성법이 실제 현실에 적용되서 거대한 규모로 공장에 적용되는 것은 바로바로 되지 않거든요.
실험실 조건에서, 연구를 하면 이 세상의 복잡한 요소를 많이 포기하고 단순화한 모형, 모델로 지식을 탐구합니다. 마치 이전 칼럼에서, 뉴턴이 공기 저항이나 중력 등을 과감하게 빼버리고 물체의 움직임과 운동을 수식으로 표현한 것처럼, 실험실은 단순한 조건에서 적은 변수들을 조정하면서 실험을 합니다. 실험실이나 연구는 이 세상의 축소판, 작은 모형이라고도 할 수 있겟죠.
그렇기 때문에 실험실에서는 잘만 되었던 것이 막상 현실로 오면 잘 안되거나, 잘 되더라도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임의로 조정하고, 조금씩 바꿀 수 있는 축소 모형, 즉 모델을 가지고 놀다가 이걸 현실에 바로 적용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죠.
뉴턴역학도 미시 세계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까지는 우리 주변의 사물의 운동이나 현상을 훌륭하게 해석해내는 모델이었으나, 양자 세계나 우주 스케일로 넘어가니 뉴턴역학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많이 발생하였고, 양자역학이라는 좀 더 진일보한 모델로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다만 뉴턴역학은 여전히 우리 일상, 거시세계의 다양한 것들을 쉽게 이해하는 매우 유용하고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에 여전히 살아있고, 저처럼 재료 공학이나 화학을 깊이 공부하는 사람들은 되어야지 양자역학이라는 좀 더 정교한 모델을 자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믿는 모델, 자주 쓰는 모델이 현실과 다르다면 그 모델을 수정하고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지하는 이 세계를 왜곡해버리더라구요. 마치 극우 일뽕들처럼. 자신이 보기 싫은 내용에 대해서 눈 닫고 귀 닫으니 개선이 될 리가 없고, 낡은 싸구려 모델로 이 세상을 왜곡해서 계속 바라보니 논쟁에서 붙기만 하면 탈탈 털리는 것입니다.
모델은 도구에 불과하고, 좀 더 좋은 정교한 모델이 나온다면 그걸로 갈아타면 됩니다. 저 또한 과거부터 다양한 틀로 이 세상을 해석해왔으나, 좀 더 많은 변수를 경험하고 여러 모델들(다른 사람들)을 만나보고 교류하면서 조금씩 더욱 정교한 모델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모델을 수정하기 보다는, 이 세상을 수정하려고 하는데, 이 세상을 수정하지를 못하니까 그냥 자신이 받아들이는 정보를 왜곡해서 받아버리더라구요. 예컨데 좌파는 우파가 잘못한 것에만 집착하고, 반대로 극우 일뽕들은 자신의 왜곡된 신념을 강화하는 극단적인 사례만 수집을 하면서 편견을 더욱 공고히 하더군요.
세상을 왜곡해서 보고,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입맛대로 판단을 하는 저급한 싸구려 모델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전 공부를 하면서 사람들이 오히려 더욱 자유롭고 유연하게 자신의 신념을 수정하거나,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의 틀을 수정할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그런 사람들은 상당히 소수인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소수가 바로 천재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저도 그들과 비슷해지고 싶습니다.
<수국비 상>
https://docs.orbi.kr/docs/7325/
<수국비 하>
https://docs.orbi.kr/docs/7327/
알고리즘 학습법
https://orbi.kr/00019632421 - 1편 점검하기
https://orbi.kr/00054952399 - 2편 유형별 학습
https://orbi.kr/00055044113 - 3편 시간차 훈련
https://orbi.kr/00055113906 - 4편 요약과 마무리
사고력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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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orbi.kr/00056735841 - 2편 예절
https://orbi.kr/00056781109 - 3편 자유로운 직업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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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orbi.kr/00057384472 - 6편 자기 스스로를 알아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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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orbi.kr/00057650663 - 8편 수학적 상상력
https://orbi.kr/00057786940 - 9편 편견깨기
https://orbi.kr/00058147642 - 10편 시냅스, 알고리즘의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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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과 먹는 곰™입니다. 오늘 여덟 시에 오르비Q에서 Pianoforte...
세상은 함수다… 뭔가 216 선생님이 떠오르는 말씀이십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원준햄 책에서 읽은 구절
함수의 정의가 굉장히 포괄적이기에, 글의 도입부 내용은 잘 공감이 안 가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아주 유익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필체가 상당히 도전적이십니다. 맨날 모델링하는 사람인데 이것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