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 - 테크니션이란 무엇인가?(feat.의사에 대한 오해)
우리가 문제를 풀 때 테크닉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방법으로 돌파하라, 이런 유형의 경우 이 식을 떠올리면 바로 쉽게 풀 수 있다 등등.
이렇게나 교육 과정에서 테크닉의 중요성(한정된 시간 안에 객관식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전략과 숙련도)을 많이 강조하지만, 이런 테크닉을 바탕으로 먹고 사는 테크니션(technician)들의 존재 의미와 의의가 굉장히 희박합니다. 항상 문제푸는 스킬과 테크닉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사회적으로는 이런 중요한 테크닉을 발휘하거나 가르치는 테크니션들을 푸대접하는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기술자' '기술사' '기술인' 정도로 번역이 가능할 듯 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블루칼라'죠. 그건 무슨 말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한국 학부모들이 대부분 희망하는, 여름날에 에어컨 밑에서 편하게 사무직으로 일하는 '화이트칼라'보다 공부도 못하고 똑똑하지 못하고 놀던 애들이나 하던 기술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전부터 말해왔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서 기술자들을 비롯한 소위 블루칼라들의 역할은 대단히 막중합니다.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예시를 하나 들어보죠. 여러분 아프면 병원가서 의사선생님 만나죠? 전 올해 초에 다리에 물혹(피부에 체액이 차서 약간 뽕긋하게 솟아남)이 나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감히 단언컨데, 외과의사들이나 간호사들, MRI 같은 초고가의 의료장비를 유지 보수하는 기술자들(MRI 한대가 대충 50억을 한다더라고요) 모두 블루칼라의 의미가 강합니다.
의사 중에서도 좀 극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외과 의사들 중에서도 정형외과 의사들은 아예 별명이 '목수'입니다. 사실 의사들의 태생부터가 기술자에 가까웠습니다. 과거 마취 의학이나 지혈제가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의 의사들의 경우, '톱질'을 빠르게 하는 실력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빨리 깨끗하게 절단을 해야 환자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거든요. 그래서 역사적으로 이발사라던지 목수 같은 기술자가 의사 일을 하던 경우도 많습니다. 외과 수술이라는 작업 자체가 태생적으로 기술자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물론 의사도 종류가 많기에 모두가 블루칼라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과 의사들의 경우 저희 부모님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여름 땡볕에 에어컨 밑에서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화이트칼라의 속성이 더욱 강해집니다. 근데 우리는 환자로서 외과의사들한테도 진찰을 받을 때, 보통 사무실에서 만나니까 외과의사들도 화이트칼라구나~ 라는 편견에 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들 선망하는 의사를 꿈꾸면서, 블루칼라를 무시하고 비하한다? 심각한 자기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잘 모르고 공부를 안해봤으니까, 무지하니까 그런 겁니다. 심지어 한 건당 수입으로 보았을 때, 내과 의사들보다 외과 의사가 더 많이 버는 편입니다. 내과 의사들은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면이 강하거든요. 많은 환자를 보고 처방을 내리는 일을 많이 하고, 외과의사들은 극단적인 경우 12시간씩 쉬지 않고 대수술을 집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 블루칼라 보고 무식하다고 비하하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그들이 더 무식하다고 비하를 해줍니다. 저희 어머니도 어릴 때에 블루칼라를 자주 화이트칼라랑 비교하시곤 했는데, 크고 나서 공부를 해보니 배신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아래는 실제 정형외과 수술 장면인데, 직접 보면 왜 별명이 '목수'인지 이해가 갈 것입니다.
gjf나 동영상 첨부가 잘 안되네요. 링크를 타고 가면 알 수 있습니다. 환자 다리에 꽂힌 저 철 막대기를 망치로 깡깡 치는 영상입니다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779/read/42933245
위의 '목수'님들께서 쓰는 도구들의 모습
대충 오토바이 수리공이 자신의 일을 의사와 비교하면서, 왜 의사가 더 많이 받냐고 불평하는 유머. 그러자 의사의 대답이 압권. "그럼 엔진이 켜진 상태에서 나처럼 수리해보시지" 라고 일갈. 이런 유머들만 보아도 간접적으로, 의사들이 기술자들과 얼마나 비슷하고 겹치는지 알 수 있습니다
https://bbs.ruliweb.com/etcs/board/300780/read/50507507
이 외에도 높은 소득으로 유명한 용접공까지 정말 무수히 많은 예시가 있지만 의사가 제일 좋은 예시라고 생각해서 가져와보았습니다. 다만 이때 한 수? 아니 두 수 정도 앞을 보는 사람은, 제 말을 듣고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 용접공은 그 매서운 열기 속에서 시각에 안좋은 불꽃을 쳐다보아야 하니까, 몸을 버리는 대가로 많이 버는 것 아니냐고.
반은 틀린 말인게, 의사라는 직업도 절대로 쉽고 편한 일이 아닙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환자보고 건강을 위해서 술담배를 자제하라고 정말 자주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의사들은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정말 많기에 술담배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게다가 보통 컨디션이 안좋고 아픈, 짜증을 쉽게 나는 사람들을 항상 손님으로 맞이해야 하니까 온갖 진상도 만나고 인격적으로도 훼손되는, 서비스 직종이 가지는 단점도 공유합니다. 활발해진 의료분쟁 덕분에 환자 생명이 걸린 수술은 꺼리게 되거나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다는 점도 요새 뜨는 트렌드이고.
그래서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외과의사들도 직업적 수명이 그닥 긴 편이 아닙니다. 1mm 잘못 칼질하면 대동맥을 건드려서 사단이 날 수도 있기에, 젊고 쌩쌩하고 손이 싱싱할 때 수술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주로 진단 진찰 쪽으로 가거나 개원을 하죠.
이 세상에 로우리스크 하이리턴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고생도 없이 고민과 노력도 없이 100% 성공한다 무조건 사기니까 차단하면 됩니다. 용접공처럼 어느 직업이든 많이 버는 직업들은 그 이유와 나름의 고민, 고생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김연아를 보고 무식한 체조선수라고 하지 않죠. 마찬가지로 유능한, 뛰어난 테크닉을 가진 기술자들은 분명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이건 뇌과학이나 교육학에서 보았을 때도 맞는 말입니다. 애초에 우리 인간이 복잡하고 거대한, 무려 전체 열량의 20%를 잡아먹는 뇌를 발달시킨 이유가 바로 '섬세한 움직임'을 위함입니다.
우리의 손과 얼굴에는 수많은 신경세포가 연결되어 있고, 미세한 근육들이 섬세하게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컨트롤하고 유지 보수할 수 있는 뛰어난 역량을 가진 뇌가 있기에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섬세한 조각도 하고 글씨도 예쁘게 쓰고 타이핑도 빠르게 하고, 각종 도구를 유연하게 잘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워드 가드너 교수의 '다중지능이론'은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IQ 테스트를 극복하고, 다양한 측면에서의 지능을 측정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김연아 선수처럼 예술성과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운동 감각 지능'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뇌 발달과 운동 신경과의 연관성을 잘 풀어낸 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0N6sz4WE7I&ab_channel=1%EB%B6%84%EA%B3%BC%ED%95%99
이런 기술자, 테크니션들이 활발하고 중요하게 일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연구소입니다. 소위 랩테크니션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비록 논문 저자로는 이름을 올리지 않지만 각종 생물 실험에서 필수적인 용액의 제조, 세포 배양 및 컨트롤, 섬세한 손기술이 필요한 영역에서 뛰어난 두각을 나타냅니다.
특히 미국과 독일처럼 나라 자체도 선진국이면서 과학 강국인 나라에서는, 이런 테크니션이라는 직업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으며 그 중요성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습니다. 대학교 학사 출신인데 10~20년 경력의 테크니션은, 이번에 새로 연구실에 들어온 포닥(박사 후 과정생)의 '을'이 아닙니다. 오히려 포닥이 쩔쩔 메면서 테크니션한테 다양한 실험 기술과 기법들을 배웁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런 구분 자체가 굉장히 모호하고, 외국이라면 전문 테크니션이 맡을 법한 일들을 대학원생이 다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손기술도 숙련해야 하면서 동시에 논문 집필처럼 창조적인 일도 해야하는 것이죠. 진짜 천재들은 두 가지 모두 잘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이 둘을 동시에 잘 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따라서 연구실에서 박사나 교수가 '머리'역할을 한다면, 테크니션들은 그들의 충실한 '손과 발'이 되어 연구실이 잘 돌아가게끔 유지해주는 것입니다. 높은 숙련도의 잔뼈가 굵은 테크니션들은 실험 실패 확률을 낮추어 논문 작성이 수월하게끔 도웁니다.
실제로 다양한 사례들을 찾아보니, 어떤 랩실은 다른 학교로 옮기면서 오랫동안 단련된 테크니션을 데려가지 않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결과가 매우 혹독했는데, 동물 실험이나 세포 배양 등의 생물 조작 실험에서 실패율이 급격히 올라가는 바람에 몇 년동안 논문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할 정도로 큰 곤란을 겪기도 했답니다.
테크니션을 비롯한 이러한 산업과 사회, 연구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블루칼라들을 낮잡아 본다는 것은 사회가 굉장히 크게 왜곡되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무조건 미국 독일이 옳고 우리가 나쁘다는 사대주의적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과거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과 못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을 비교하고, 그 부분을 개선함으로써 저 또한 성적이 올랐듯이, 과학 강국인 미국과 독일처럼 테크니션과 같은 블루칼라에 대한 정당하고, 공정한 처우와 대접은 궁극적으로 사회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 못 하면 기술이나 배워서 먹고 살라는 이야기를 학교에서 많이 듣죠. 그럼, 그 기술이라는 것을 개나소나 다 조금만 배우면 잘 해서, 누구든지 그 기술로 먹고 살 수 있나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마치 성적이라는 기준으로 사람들을 줄을 세우면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듯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기술들도 보면 조금만 하고도 정말 잘 해내는 사람도 있고, 오랜 시간을 들여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시를 들자면, 백종원 같은 성공하고 명망있는 요리 사업가나 요리사들이 무식하고 게으르고 끈기없다고 느껴지십니까? 어느 분야가 되었든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위기 속에서도 끈기를 가지고 최소 10년 정도 경력을 쌓는다는 것이고, 전문가 자격을 따면서도 동시에 대중성까지 확보해서 성공한다는 것은 굉장히 대단하고 드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여러분에게 '공부의 결과' 즉, '성적'이 아닌, '공부에 대한 태도'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공부가 어렵고 재미없다고 맨날 자던 사람이, 요리사처럼 체력적으로 지치고 항상 끼니를 놓치고 실수로 칼에 베이거나 화상을 입는 등 어렵고 힘든 일들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요?
비록 성적이 안나오더라도, 어렵고 다들 힘들다고 아우성거리는 공부를 끝까지 놓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태도'를 보인 사람들은 분명 이 넓은 세상의 어디선가 자기 적성을 찾고 성공하리라 믿습니다. 전 잠재력을 그렇게 봅니다.
단순히 표면에 보이는 학벌, 학위, 성적에 집착하지 않고, 개인의 실력과 노력을 있는 그대로 왜곡하지 않고 인정해주는, 블루칼라라고 화이트칼라보다 열등하다고 성급한 일반화를 하지 않는, 그런 상식적인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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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bkorea.co.kr/User/Qstn/AnswerWrite?qstnNo=78136
https://kosen.kr/know/issue/ISSUE_0000000000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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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28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