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킴 [537476] · MS 2014 · 쪽지

2015-11-05 10: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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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단편]이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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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이 2개 있다.

각각 둘 다 수십만원의 물건들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음악은 좋게 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산 물건들이다.

하나는 바깥의 소리를 막아줘서 좋다.

그런데 뭔가 꽉 막힌 느낌이라 귀가 아프다.

나머지 하나는 뚫린 느낌이라 귀가 편하다.

그런데 바깥 소리를 하나도 막지 못한다.

오늘은 조용한 곳에 갈 것 같다.

그래서 두번째 이어폰을 골라 밖으로 나선다.

서울역에 도착해 패스트푸드점으로 간다.

이곳은 시끄럽잖아.

금새 두번째 이어폰을 가져온 것을 후회한다.

하지만 내 선택으로 일어난 일이니 화가 나는 것은 아니다.

주문한 음식을 들고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본다.

군인들이 많다.

휴가나왔겠지.

팍 인상을 쓴 외국인이 노트북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마 비즈니스 때문일거야.

내 옆자리엔 남루한 행색의 노숙자가 앉아 있다.

아무 음식도 주문하지 않은 채, 무언가를 계속 적고 있다.

그의 발치에는 페트병이 여럿 담긴 비닐봉지가 있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

그는 어디서 모든 옷을 주워입은 듯한 기괴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윗옷은 검은 폴라티, 하의는 몸빼바지다.

아마 궂은 일을 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가 갑자기 졸기 시작한다.

머리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저러다 옆으로 쓰러져 다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어느새 그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니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나 배가 고프지 않았다.

옆자리의 남루한 행색의 남자에게 내 음식이 담긴 트레이를 주었다.

남자는 퍼뜩 깼다.

일어나서 나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며 욕을 한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그 남자의 침이 내 얼굴에 튀기도 한다.

하지만 난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남자는 나에게 콜라를 뿌렸다.

차가웠지만, 옷은 빨면 되는 것이기에, 화가 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나와 남자를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다.

나도 유명인이 되는구나 싶었다.

아, 조용한 곳으로 가기로 했었지!

나는 잔뜩 화가 난 남자를 뒤로하고 매표소로 갔다.

이어폰을 끼고 매표소까지 걷는다.

하지만 바깥 소리를 못 막는 이어폰 때문에 남자의 목소리가 살짝 들려온다.

상관없다. 오늘 갈 곳은 조용한 곳이다.

나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곳으로 가는 표를 산다.

여기라면 조용한 시골이겠지. 하며 상상에 빠진다.

자판기와 벤치만 놓여 있는, 사람은 없는 조용한 간이역.

매표소에는 게으른, 하지만 손님 앞에서는 성실한 직원이 앉아 있겠지.

새로운 사람들도 만날 것이다.

그들의 성품도 또한, 그곳처럼 차분하고 조용하겠지.

따위의 상상을 하며 플랫폼으로 내려간다.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마주친 인연도 인연이겠지.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그런데 주변이 시끄러워서 이어폰 때문에 화가 나기 시작한다.

시끄러운 주변 사람들이 짜증나기 시작한다.

갑자기 나에게 욕설을 하며 콜라를 뿌린 남자에 화가 나기 시작한다.

콜라의 설탕 때문에 손이 끈적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화가 난다.

이게 다 남루한 복장의 남자 때문이야. 생각한다.

그를 찾으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시 올라간다.

남루한 복장의 그는 가방을 메고 이상한 봉투를 가득 든 채로 서 있었다.

그가 뭘 하려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준 음식도 맛있게 먹었을거야.

그래놓고 고맙단 말도 하지 않았단 말이지.

나에게 콜라를 뿌리고도 양심의 가책을 못 느꼈을 거야.

나는 점점 더 화가 났다.

여긴 사람이 많으니까 기다리자. 저 남자를 쫓아가자. 조용한 곳으로 갔을 때 덮치는 거야.

남자도 열차를 기다렸던 것인지, 플랫폼으로 내려간다.

플랫폼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그래서 나의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짜증과 분노가 솓구친다.

나에게 이어폰은 소중한 물건이지.

그래 이게 얼마짜린데, 저 남자는 구경도 못할 물건이야.

그런데 내 이어폰을 이렇게 무의미한 물건으로 만들다니.

저 남자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아야겠다.

10분 뒤 열차가 들어온다.

남자는 안전선에 서서 열차를 기다린다.

나는 조용한 곳으로 갈거야.

조용한 곳으로 가서 저 남자를 혼내줄거다.

소중한 것도 빼앗고, 저 남자의 얼굴에 침도 뱉을 거다.

나에게 했던 짓들을 똑같이 돌려줄거야.

마지막엔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들어야지.

무릎을 꿇릴거야.

생각을 그만 둔다. 행동을 할 차례다.

열차가 들어온다.

그 남자가 안전선 위에 선다.

나는 그 남자를 껴안고 열차의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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