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면하는놈. [455174] · MS 2013 · 쪽지

2014-11-19 17:54:03
조회수 586

유의미한 1년과 무의미한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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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수능을 본 고3 학생입니다.


솔직히 수능끝나고 아주 큰 멘탈 붕괴현상으로 오르비에 들어와서 공부관련 글을 읽는 것 조차 싫었지만
혹시 저 같은 분들이 이 글을 보고 공감해주시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 같아서 글을 적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은 학구열이 높은 곳은 아닙니다. 특히 수능 쪽으로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시로 대학을 가고 그냥 떨어지면 이 지역 근처의 비교적 낮은 지역의 대학에 들어가는게 일반적인 입시모습이고, 정시로 승부를 보겠다는 학생들은 대부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 중 이제는 후자의 입장이 되었네요. 아무튼 저는 의사라는 목표를 가지고 공부해나가던 학생이었습니다. 일반고에 진학해서 고1때부터 앞서 말한 일반적인 입시 모습대로 내신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 결과 고1때 종합 내신이 1.45로 의대에 가기에는 이미 멀어진 내신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때가 고등학교 와서 처음으로 좌절한 것 같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기숙사에 장난치며 놀때 혼자 귀마개를 꽂고 수학책을 붙들었고, 급식실에서 줄을 기다릴때도 혼자 단어장을 보며 영어단어 1개라도 더 외우고자 노력했던 나인데. 
반면 친구들과 주로 게임이야기를 하고 주말에도 게임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던 친구녀석이 1.0의 내신을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인가? 하며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렇게 고1생활이 지나가고 고2때 지금부터라도 올 1등급을 받으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에 부모님께 부탁해서 학원에 처음 가보게됐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굳이 수시가 아니더라도 정시로 의대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원은 재수학원인데, 이 학원에서 처음으로 기출문제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학원의 재수생 형들을 보며 공부하는 방법도 알게 됐고, 공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고, 앞으로 2년만 공부 열심히 한다면 제 목표를 이룰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하고 살짝 내신을 놓은 탓에 고2때까지 종합 내신이 1.7이었습니다. 

대망의 고3이 되어 정시로 의대에 가는 것을 목표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고2 12월 부터 고3 3월까지는 정말 미친듯이 했습니다. 그리고 3월달이 되서 살짝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페이스를 유지하자니 내신이 무너질 것 같고, 내신을 조금 잡자니 이제야 잡은 모의고사 성적이 떠날 것 같아서 우유부단하게 약 1주일을 보내며 흐름이 깨진채 공부했습니다. 
어쩌면 이때의 1주일이 지금의 제 결과를 예견했을 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우선은 닥쳐있는 내신에 열을 올리기로 결정을 하고, 1학기 동안은 내신의 비율을 조금 높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까지 쌓은 내신이 정말 낮지도 높지도 않았기 때문에 내신을 조금이라도 올리면 마음이 안정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종합 내신은 대학별로 가중치 반영한 내신이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75였습니다.  

수시철이 되서 그때 저 자신과 약간의 타협을 시도했습니다. 굳이 의사가 아니더라도 생명공학 연구원이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주로 과학기술원 쪽의 대학에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수시 중 1개는 버리는 셈 치고 이 지역의 애들 많이 뽑는 다니깐 지역인재 전형으로 원광대학교 한의예과에 지원했습니다.  

근데 의외로 지역인재 전형에 지원한 학생이 적어서 1차에 붙었습니다. 정말 제 내신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이지만 정말 운이 좋은 탓에 붙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영수 합 5만 맞추면 되니 굳이 정시로 아둥바둥 노력하기보다는 수시에서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에 모의고사를 볼때마다 132로 항상 최저를 맞추지 못하는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영어 딱 1문제만 더 맞으면 131로 최저를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희망을 갖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수능을 본 결과 국영수에서 거의 다맞는 듯한 성적을 받아야 최저를 맞출 수 있는데, 저는 평소에 맞던 만큼 맞았습니다. 시험이 분명히 쉬웠는데도 불구하고 전 9월에 본 성적과 거의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즉, 상대적으로 쉬웠지만 전 점수는 그대로인 터라 등급이 확 내려갔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최저를 맞추지 못할 것을 직감하곤 바로 잠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선 정말 실감이 나지않았습니다. 그저 최저를 맞추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왔는데, 지금까지 노력한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고, 수능 다음날 발표한 수시 결과 남은 2개 대학이 모두 떨어져서 수시는 올킬이고, 수능은 못보고 전형적인 인생 망한 고3이 됐습니다.

그런데도 참 이상한건 후회가 되진 않습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후회가 안남도록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만 결과가 이러니 그냥 그대로 체념했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더 멘붕이 된건 저희 부모님이었습니다. 당연히 최저를 맞춰서 한의예과에 입학하실 줄 알았던 부모님은 큰 상실감을 느끼셨고, 지금은 아프시기 까지 합니다.

참... 이놈의 수능이 뭐라고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변의 안타까워 하는 친구들이나 담임선생님은 1년도 해보면 괜찮지 않냐는 말을 하지만 저는 솔직히 1년 더해서 성공할 거란 확신이 서지않습니다. 너무나 큰 노력을 들였지만 그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된 이 상황에 더 이상 무언가에 노력을 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저 수능 성적이 나올때까지만 기다리고 있지만, 아침마다 잠에서 깰때마다 그냥 꿈에 갇혀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능성적표가 나오는 날이 오지 않길 바랍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막 글을 써내려갔지만 제목처럼 내가 이런 노력까지 할 수 있구나 라고 깨달은 1년이 었지만 노력의 과정만 있을 뿐 결과는 사라진 무의미한 1년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지금 뭘 해야될지도 모르겠고, 그냥 주변의 사람들도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집에만 있으면 계속 나쁜쪽의 생각이 계속 들어서 어쩔수 없이 PC방이라도 가서 하지도 않는 게임을 켜놓고 그냥 있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께선 제가 한 노력이 별거 아니라고 말할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정말 감시카메라 놓고 1년동안 제가 공부한 모습을 찍어놓아서 증명하라면 증명할 정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도대체 지금부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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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한의사되고싶다 · 492193 · 14/12/14 23:45 · MS 2014

    힘내시고 한번 더 했으면 하네요 물론 한번더 한다는거 자체가 여러모로 두렵기도하고 주변 시선도 겁이 나지만 본래의 목표를 못 이룬 체 몇년 뒤의 다른 삶 생각하니 막막할 거 같더라구요 전 이번에 재수 실패했지만 반수라도 꼭 해서 다시 원하던 곳에 갈 겁니다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지마세요 재수학원에만 가보셔도 345수도 널렸습니다 전 성적맞춰가는 명문대생보다 확실한 목표를 가진 345장수생이 더 멋있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