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Roman. [69422] · MS 2004 · 쪽지

2014-01-14 10: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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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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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 보면, 일상화된 공기가 답답해 한 번쯤 튀고 싶을 때가 있다. 튄다는 건 많은 주목을 받게 됨을 뜻하는데 항상 요긴한 것만은 아니다. 자신을 보는 시선이 긍정적이리라는 보장이 없는 탓이다.

  부끄럽지만 대학생 시절, 한 번 써클렌즈를 낀 적이 있다. 어색했지만 눈동자는 커진 것 같고 왠지 모르게 내가 좀 더 귀여워보여(?) 만족스러웠다. 학교에 갔더니 다들 난리가 났다. 남자가 써클 렌즈를 왜 끼냐에서부터 항상 책읽고 여자보기를 돌같이 하는 네가 끼니 웃긴다는 반응까지 각색(各色)이었다. 이 때 내가 말했다.

  "내가 일회용 렌즈를 다 써서 샘플 쿠폰이 있어 받으러 갔더니 이걸 주더라고"

  이 말 한 마디에 그래도 내가 써클렌즈를 끼게 된 동기와 경위는 정당화되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만약 내가 쓰던 일회용 렌즈가 있더라도 써클 렌즈가 또 있었다면 난 끼고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며 이 때 저러한 변명조차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난 이렇게, 튀는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요인을 '불가항력'이라고 부른다.

  '불가항력'을 활용할 줄 알면 생활에 제법 도움이 된다. 집단생활에서 특정 기득권 혹은 혜택을 혼자서 전유할 때 받게 되는 주목은 대개 부정적 시선으로 이어진다. 이 때 그 부정적 시선을 탄력적으로 불식시키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이 '불가항력'이다. 개인적으로 키와 발이 큰 편인데 특히 발이 매우 크다. 군대에서 사이즈에 맞는 활동화가 없었고 덕분에 나는 소장하고 있던 조던 운동화를 부대 안에서 신고 다녔다. 밖에선 별 것 아니겠지만 아주 작은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는 훈련소를 생각해 보면 이는 나쁘지 않은 혜택이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튀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방송에서 G드래곤, 소지섭 같은 이가 실험적 패션을 시도하지만 실제로 그들조차도 평범한 대학생 신분으로 현실(이를테면 대학 오티)에서 그러한 옷을 시전할 경우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할 것이다. 특히 "너 왜 이렇게 튀게 하고 나왔어?"라는 물음에 "나 좀 튀고 싶어서 그랬어"라고 말하는 건 쿨하지 못해보여 금기시된다. 뭔가 정당한 사항을 찾아야 되는데 이게 바로 불가항력이 된다.

  요즘 스타일을 위해 안경을 많이 쓰는데 가끔 안경알을 넣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 경우 꼭 "야 너 안경알도 없이 쓰냐?"하는 사람이 한둘이상 생긴다.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알을 넣고 아주 살짝 도수를 넣는다든가 하는 불가항력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실 이런 작업은 남 눈치 전혀 안 보고 내 갈 길 가겠다 ㅉ신경쓰는 사람들에겐 크게 필요가 없다. 다만 상당히 많은 리스크가 따를 수 있음은 알아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스워지지 않는 스탠스를 만들기는 대단한 노력이 요구되는 작업이지만 그래도 이러한 '불가항력'을 자신의 튀는 행동 하나하나에 심어놓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이상이 깨닫게 된 소소소한 파편이다.

  p.s: 의도치 않았지만 글이 어렵게 쓰여진 것 같아 삭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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