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서행복해요 [386561] · MS 2011 · 쪽지

2012-10-12 23:12:03
조회수 509

★10.12 근현대사 문제 풀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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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만 딱보면 단원이 어느단원인지 알 수 있다는ㅋㅋㅋㅋㅋ



Q1.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배경은? (주관식)



Q2. 임시정부를 구성한 3개의 정부는? (주관식)



Q3.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 국민 의회의 법통을 계승하였다. ( O / X )



Q4. 임시정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 민주주의에 입각한 임시헌법을 갖추고 출발하였다.
 (2) 정통령 이상설, 부통령 이동휘로 구성되었다.
 (3) 최초로 3권분립에 입각한 민주 공화제 정부였다.
 (4)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5)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다.



Q5. 임시정부의 활동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 연통제, 교통국을 구성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군자금을 조달하였다.
 (2) 독립군 양성을 위해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중국 군관 학교에 입교하였다.
 (3) 남만주의 독립군을 통합하여 육군 주만 참의부를 직할 부대로 편성하였다.
 (4) 기미독립선언서를 발표하였다.
 (5) 구미 위원부를 이승만이 주도하였다.



Q6. 헌병경찰 통치기의 삼엄한 경비로 연통제와 교통국이 파괴되었다. ( O / X )





Q7. 임시정부가 위기에 빠지게 된 배경에 대하여 적절하지 않은 것은?

 (1) 외교 성과가 미흡하였다.
 (2) 이승만의 국제 연맹 위임 통치 청원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3) 일제의 탄압으로 연통제, 교통국이 파괴되었다.
 (4) 사회주의 사상 유입과 독립운동 방략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었다.
 (5) 중국정부의 조선독립군 수색이 심해졌다.



Q8. 국민 대표 회의의 결과로, 임시정부의 침체가 지속되었다. ( O / X )


Q9. 다음 임시정부의 지도체제를 순서대로 쓰시오. (주관식)


[ 대통령 중심제]     [ 주석 중심 단일 지도체제 ]      [ 국무령 중심의 내각책임제 ]      [ 국무위원들의 집단지도체제 ]      [ 주석,부주석 지도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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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zxxaazz · 413690 · 12/10/12 23:52

    1.3.1운동후 지도부의필요성??
    2.한성정부 대한국민의회 상하이임시정부
    3.x 한성정부인가...
    4.2 2번은 대한광복군정부?
    5.4 이건3.1운동?..
    6.o
    7.2
    8.o
    9.대통령중심제-국무위원-국무령-주석,부주석-주석단일

  • zzxxaazz · 413690 · 12/10/13 00:02

    아7번2정읍발언이랑햇갈...2번아난댐답모르갯내요ㅜㅜ

  • 실패해서행복해요 · 386561 · 12/10/13 00:15 · MS 2011

    1) OK!!!
    2) OK!!!
    3) OK!!!
    4) OK!!! 맞습니다. 대한 광복군 정부 (1914) - 최초의 임시정부 / 정통령: 이상설 부통령: 이동휘
    5) OK!!! 3.1운동 시작 전 민족대표33인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지요. in 태화관....-_-
    6) 땡~~~~~~~~~~~! 왜냐하면, 연통제와 교통국이 파괴된 시기는 문화통치 때였어요!! 1921년!!
    7) 땡~~~~~~~! 답은 5번 입니다. 이승만이 국제 연맹에 위임 통치를 부탁했었지요? 그거랑 공금 횡령 때문에 파면당하게 되는거지요~ 임시정부의 대통령이 되는 사람이 지 맘대루 국제 연맹에 위임 통치 부탁하면 솔직히 ........ 정말 임시정부가 뭐가 필요한가 하는 회의도 들것이고... 위기이죠
    8) OK!!!
    9) 대통령 중심제 (1919.12월) -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 (1925) - 국무위원들의 집단 지도 체제 (1927) - 주석 중심의 단일 지도 체제 (1940) - 주석,부주석 지도체제 (1944)
    순서 엉망진창인데 당당하게 써주셔서 재밌네욬ㅋㅋㅋ푸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zzxxaazz · 413690 · 12/10/13 00:17

    헐ㅋㅋㅋ9번...저계속저렇게알고있었는데이번에제대로알았네요 감사합니다ㅎㅎ

  • 실패해서행복해요 · 386561 · 12/10/13 00:20 · MS 2011

    헐.......그렇게 알고 계셨다는것에 넘 귀여우셔서 웃고갑니닼ㅋㅋㅋ전 찍으신줄ㅋㅋㅋㅋ

  • 좀생이 · 302817 · 12/10/13 14:19 · MS 2009

    1. 3.1운동 당시 수뇌부가 없었던 데에 대한 반성과 환류
    2. 한성 정부(정통성)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통합 전. 장소. 참고로 9월 대통합 이전에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정식 명칭이었습니다.) 연해주 대한국민의회
    3. 고로 법통은 한성 정부 계승
    4. 2번. 저건 대한 광복군정부...
    5. 5번. 독립선언서 발표 이후 성립...
    6. 헌병경찰이 아니무니다. 고등경찰 이무니다.
    7. 5번. 초기 임정은 외교독립론이무니다. 미쓰야 협정과는 직접적 피가 없으무니다.
    8. (백범일지 일부)그리하여 나는 국민대표회의를 해산하였고... 처음에는 천 명가량의 독립운동가가 이젠 몇 십명 밖에 남지 않았다... 청사 월세가 36불인데 이것조차 못 내서 송사를 겪기를 여러 번... 나는 잠은 (임시정부)정청에서 자고 밥은 동포들에게 빌어먹었다... 그러나 눈칫밥은 아니주었으리라 믿는다...
    9. 이승만의 주장으로 대통령제-박은식의 국무령제로 개헌-김구의 집단지도체제(주석은 윤번제로)-중경 도착 후 (레알)주석제-부주석 추가

  • 실패해서행복해요 · 386561 · 12/10/13 17:01 · MS 2011

    1) 오케이@_@
    2) 오케이@_@
    3) 오케이@_@
    4) 네 비록 8개월만에 해체되었지만 최초의 임시정부는 바로 대한 광복군 정부 (1914년) in 연해주 였죠.
    5) 오케이@_@
    6) 오케이@_@ 문화통치기에 파괴되었답니다. 훌륭하심니더
    7) 오케이@_@
    8) 국민대표회의에서 개조파와 창조파로 나뉘어서 의견을 하나로 못내고 그날 회의 결렬되고 끗.....ㅠㅠ단결과 화합이 중요한 때에......
    일제식민사관의 주장 중 한 가지가 우리민족은 당파적인 민족이여서 단결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 통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까던데......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역사를 보면서 특히,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그 말이 일부 맞는 것 처럼 느껴질때가 많아서 막 씁쓸하고 그러네요 ㅠㅠ
    9) 와웅 자세한 설명 감사감사하므니다

  • 실패해서행복해요 · 386561 · 12/10/13 17:01 · MS 2011

    1) 오케이@_@
    2) 오케이@_@
    3) 오케이@_@
    4) 네 비록 8개월만에 해체되었지만 최초의 임시정부는 바로 대한 광복군 정부 (1914년) in 연해주 였죠.
    5) 오케이@_@
    6) 오케이@_@ 문화통치기에 파괴되었답니다. 훌륭하심니더
    7) 오케이@_@
    8) 국민대표회의에서 개조파와 창조파로 나뉘어서 의견을 하나로 못내고 그날 회의 결렬되고 끗.....ㅠㅠ단결과 화합이 중요한 때에......
    일제식민사관의 주장 중 한 가지가 우리민족은 당파적인 민족이여서 단결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 통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까던데......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역사를 보면서 특히,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그 말이 일부 맞는 것 처럼 느껴질때가 많아서 막 씁쓸하고 그러네요 ㅠㅠ
    9) 와웅 자세한 설명 감사감사하므니다

  • ES.lia · 379970 · 12/10/13 14:41 · MS 2011

    아 임정도

    독립군 양성을 위해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중국 군관 학교에 입교하였다

    이랬나요? 전 의열단에만 해당되는 줄.... 아 그러고 보니 이런말 임시정부 단원에서 본듯도 하네요~

  • 실패해서행복해요 · 386561 · 12/10/13 16:46 · MS 2011

    임시정부에서 외교+실력양성+무장투쟁 짬뽕이기 때문에
    독립군 양성을 위해 무관학교를 설립한것은 당연한 것이였죠~
    그리고 임시정부의 구성원에 안창호 (실력양성 주장) 신채호 (무장투쟁 주장) 가 있으니깐..
    그렇다고 보실 수 있겠네요~

  • 좀생이 · 302817 · 12/10/13 19:43 · MS 2009

    백범부터가 빠르고 효과적인 광복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공군이 필수다 라고 주장한만큼(결국 아들 김신 선생은 광복 후 공참총장을 지내죠...) 임정이 독립 전쟁을 일부러 후순위에 둔 건 아닙니다. 다만 이승만 계열의 목소리가 컸고 군벌 내전으로 관내에서 군대를 키운다는 건 제로퍼센트였던지라...-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