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Roman. [69422] · MS 2004 · 쪽지

2018-01-18 16: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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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자장(磁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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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현실이 되긴 어렵지만 현실을 이끌긴 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좋은 학교 가야지를 입에 달고 사는 애들은 목표달성은 몰라도 언저리는 보통 간다.

맨날 뒤지고 싶다 말하는 애들은 조심해야 한다. 말은 의식을 구획하고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말에는 힘이 있다. 말은 뱉어지는 순간 공기 속 파동과 함께 사라지지만 무언가를 남긴다.

난 이를 자장(磁場, magnetic field)이라 표현한다.


  사랑한다는 말, 상처주는 말, 위로하는 말 모두 자장을 남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말이 아니라 그 자장을 기억한다. 상처받았던 말이 아닌, 그 때의 충격과 기억을 떠올린다.


  더 나아가 사람은 그가 했던 말의 자장으로 기억된다. 어떤 친구를 만났을 때 첫 인상은 외모 기타로 결정되지만 이후 증적되는 건 말의 자장이다. 나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 웃긴 사람, 하는 말마다 비수를 꽂는 사람 혹은 좋은 사람인 척 은근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까지 모두 그가 했던 말의 자장으로 기억된다. 그가 했던 말 하나하나가 기억나지 않아도 그에 대한 인상은 형성돼 있다. 


  특기할 건 말의 자장이 형성되는 데 상대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혼잣말을 해도 그 말은 자장을 이루어 내 몸을 감싼다. 펜싱 선수가 마지막 연장을 앞두고 "할 수 있다."고 되뇌였던 것도 그래서이다. 


  얼마 전 아르바이트로 학원 강의에 나갔다가 충격받은 일이 있다. 한일월드컵 시절에 존재조차하지 않았던 애들이 "죽고 싶다" "뒤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좋지 못하다. 그런 식으로의 장난 같은 내뱉음은 삶을 가벼이 여기게 한다. 바라건대 말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말에는 힘이 있다. 토해낸 말의 자장은 세상을 돌고 상대를 돌아 결국 나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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